생명과 생태환경

“무위당 뿌린 ‘생명·협동’ 씨앗 키워 지구적 위기 이겨내야죠”

관리자 0 133 08.04 19:34

“무위당 뿌린 ‘생명·협동’ 씨앗 키워 지구적 위기 이겨내야죠”

 

 

생명협동교육관 초대 관장을 맡은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은 원주에서 30년 넘게 장일순 사상을 알리고 실천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 생명협동교육관 제공
생명협동교육관 초대 관장을 맡은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은 원주에서 30년 넘게 장일순 사상을 알리고 실천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 
생명협동교육관 제공

“이제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이념의 시대’를 넘어 ‘생명과 협동의 시대’로 들어서야 합니다. 
코로나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생명과 협동이 시대정신입니다.”

 

 

 

오는 9월 ‘협동조합의 메카’ 강원도 원주시에 생명협동교육관이 문을 연다. 생명협동교육관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생명사상과 협동조합운동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시설이다. 한국 협동조합과 한살림운동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무위당은 1970년대 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1970~80년대에는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도 각별한 족적을 남겼다.

 

 

 

생명협동교육관 초대 관장을 맡은 황도근(62) 무위당학교 교장을 27일 전화로 만났다.

9월 ‘생명협동교육관’ 초대관장 맡아 9년째 운영해온 무위당학교 확장판
“공동체운동에서 ‘교육’ 가장 중요해”


 

 

 

 

1986년 장일순 선생 조카사위로 인연 물리학자·상지대 교수로 ‘민주화’ 앞장
“교만 말라던 말씀 평생 가르침으로”

생명협동교육관은 2012년부터 진행해온 무위당학교의 ‘확장판’이다. 당시 원주에서는 한살림과 신용협동조합, 원주생협, 대학생협, 의료생협 등 지역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고, 무위당학교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일순 선생의 뜻에 따라 이들 단체의 실무자와 시민 교육을 담당해왔다. 

원주시 행구동의 옛 웰딩콘텔 건물을 고치고 증축해 지하 1층과 지상 6층 규모로 들어서는 생명협동교육관은 교육실과 세미나실, 전시실 등을 갖췄다. 또 18실 규모의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식당 등도 들어설 예정이다.

 

 

 


황 관장은 “선생은 늘 ‘협동은 교육’이라고 강조하셨다. 공동체 운동을 해보면 가장 큰 문제가 내부 갈등이다. 충돌과 분파의 소지가 많다. 하지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삶의 가치가 마음 중심에 자리하면 업무적으로는 헤어질 수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정반대의 길을 가지는 않는다. 결국 공동체에 머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위당학교는 개설하자마자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마침 2012년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 등의 영향이 컸다. 협동조합 강좌에는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몰려 뒤에 서서 들어야 할 정도였다. 또 2017년 ‘사회적경제’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되자 더욱 주목받았다. 전국적으로 ‘협동조합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면서 한 해 평균 탐방객 1만5000여명이 원주를 찾았다. 이에 숙박을 하면서 교육할 수 있는 연수형 교육기관이 필요해졌고, 원주시 등의 지원을 받아 생명협동교육관을 개관하게 된 것이다.

 

 

 


황 관장과 무위당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의정부가 고향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황 관장이 원주에서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86년 원주가 고향인 아내와 결혼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결혼을 하고 보니 장인이 무위당의 동생이자, 평생교육자로 살아온 장화순 전 원주 진광고 교장이었다. 무위당의 조카사위가 된 그는 처가 바로 앞에 살던 장 선생과도 자주 교류할 수 있었다.

 

 

 


1989년 상지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원주에 정착한 그는 교수협의회 회원으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그때 무위당에게 들었던 얘기가 황 관장에게 평생의 가르침이 됐다. 무위당은 5·16쿠데타 직후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됐던 경험을 들려줬다. 함께 수감된 동료가 ‘우리는 정치범인데 왜 잡범과 함께 있게 하느냐’고 항의하자 “이보게, 잡범이나 정치범이나 뭐가 다른가. 정치범이라고 특별대우 받으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황 관장은 “그 얘기 끝에 ‘잘못된 일을 개혁하려는 투쟁은 얼마든지 하지만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특히 교만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밑으로 기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근데 이 말씀이 제일 어렵다. 지식인들은 제 자랑의 늪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인터뷰도 그런 자리”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상지대 민주화투쟁 1세대로 활동했던 황 관장은 이후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다 무위당 10주기를 맞은 2004년부터 지역공동체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무위당 기념사업도 개편하고, 의료생협도 만들고, 원주 녹색연합 상임대표도 맡았다. 또 노인생협·대학생협·원주협동조합협의회 조직구성 등을 돕는 등 일도 맡았다.

 

 

 


화려한 공동체 활동가로서의 이력은 그가 물리학자라서 더욱 눈길을 끈다. 황 관장은 상지대 한방의료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40년 동안 자석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한 뒤,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논문과 국제학술논문 발표만 70여편에 이른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상지대 재직 초기 서울대 ‘과학철학’ 박사과정 입학을 하려다 포기했던 그는 물리학과 인문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 관장은 “물리학이 곧 철학이다. 방법만 다를 뿐이다. 물리학자는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려 한다. 인문학은 논리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이 필요한 특성이 있다. 30여년 선생으로 살았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배우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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