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세례명이 뭐야?”

관리자 0 588 2021.04.18 06:52

75세 이상 주민(42명)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 및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받고 있다. 마을 안쪽에 사는 주민은 총무(77세)에게 부탁했고, 차량을 이용해서 가야 하는 마을 밖에 사는 주민(20명)은 3년 후 차기 이장으로 지목한 반장 우택이를 대동해 집집이 방문해 면접을 통해 백신 접종 동의서를 받고 있다. 

마을 밖에 사는 주민들은 대개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 반장에게 이장이 하는 일을 전수하고 외지에서 30년 이상 살다가 지난여름 귀향을 한 반장 우택이를 이주해 온 주민들에게 인사도 시킬 겸. 그리고 요즘 술자리에서 우택이를 만나면 내가 긴 여행을 떠나거나 마을을 비우게 되면 우택이가 나를 대신할 수 있도록 업무를 전수하고 있다.

 

마을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박**(85세 이상으로 추정) 아주머니는 내가 지난해 이장이 되어 『2020년 상반기 주민등록 사실조사』를 다닐 때 집에 계시지 않아 만나 뵙지를 못했다. 그 후에도 찾아갔지만 안 계셨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주머니가 응답했다. 말을 나보다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우택이가 아주머니에게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아주머니는 휴대전화가 없어) 아들이나 딸 전화번호 알아요?” “몰라. 딸은 없어.” “그러면 아들 전화번호 적은 수첩 있어요?” “(아주머니가 내게 전해준 수첩을 넘기며) *** 이사람은 누구죠?” “아들. 그런데 죽었어.” “(아래에 쭉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며) 이 사람은?” “며느리” “(옆에 있는 반장에게) 우택아, 이 번호 사진 찍어.” “이 사람은?” 나머지는 모두 손주 들이었다. 그런데 적혀 있는 휴대전화는 016, 019로 시작하는 오래전에 적어 놓은 번호들이다. 서울, 인천, 수원의 집 전화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 수첩에 ‘갈전리 이장 송영호 010-3303-2346’이라 적고 이장 전화번호라고 알려드렸다. “아주머니, 명절에 누가 찾아와요?” “손주들. 안 올 때도 있고.” “(아주머니가 성당에 다닌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은 적이 있어) 아주머니 세례명이 뭐야? 박**” “아니. (세례명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이름 말고 성당에서 부르는 본명(내가 어릴 때는 세례명이라는 말 대신 본명이라는 말을 썼다).” “박**” “(옆에 있던 우택이가) 성당에서 사람들이 마리아, 요한나 뭐 그렇게 부르는 이름?” “박**” “(우택이에게) 이 아주머니는 (주사) 안 맞는 게 좋을 거 같다.” 

나는 다음에 방문할 주민에게 전화하려고 차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 동안 우택이가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택이가 내게 와서 “형, 이 할머니 먹을 게 없데요. 그럼 뭘 먹고 사냐고 했더니 쑥이랑 풀 뜯어다 먹는데.” “(우택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여) 뭐라고? 야... 내가 큰 죄를 지었구나. (내일 면사무소에 가서 당장 쌀 한 포대 가져다드려야겠다. (오늘 배달하려고 차에 실어놓았던 달걀 한 판을 들고 가) 아주머니 이거 잡숴.” 

이장이라는 자가 우리 마을에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형, 이 할머니 치매인 거 같애.” “아니, 그런데 어떻게 손주들 이름을 줄줄 꿰고 있어?” “치매 환자는 과거 일은 정확하게 기억해. 우리 삼촌이 지금 그렇다니까.”

내일 이 아주머니 집에 김치 몇 포기 담아가서 냉장고며 세간살이를 살펴봐야겠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 아주머니네 집에 찾아가 말벗이라도 되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부활절. 이 아주머니를 통해 내가 닮고 싶은 예수의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자에게 다가간 예수. 

 

#이장일기 #안성시미양면갈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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