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독서

 

세마 성당 2021. 10월 영적 도서: 성 프란치스꼬의 「잔 꽃송이 」

관리자 0 432 2021.11.30 21:47

세마 성당 2021. 10월 영적 도서: 성 프란치스꼬의 「잔 꽃송이 」


엮은이 작은 형제회 (한국 관구 프란치스코회)

 

 

나눔의 글

 

잔 꽃송이는 살아가는 이유와 보람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걸음걸음 사이에서 질문과 답을 던지고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언어들을 제공하고자 프란치스코 출판사가 새로 낸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성 프란치스코 성인과 관계있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1부는 성인과 몇몇 동료에 관해 수집된 신비의 기적성인들의 탈혼과 환시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2부는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관한 몇 가지 고찰로 되어 있습니다성인의 생애에 가장 빼어난 사실 중의 하나인 오상에 관해 아주 상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잔 꽃송이는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전기 가운데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인은 특히 인간의 단순함과 소박함에 가치를 두었던 만큼 이 잔 꽃송이는 단순함과 인간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신비로운 기적과 덕행 이야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잔 꽃송이를 간추려서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서문

 

중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에서 200km가 넘는 굽비오라는 작은 마을에 늘 내려오던 늑대에 관한 아주 흐뭇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때는 13세기 초였다. “호랑이에게 물려갈 줄 알면 누가 산에 가나?”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사람들은 그 늑대가 무서워 아무도 마을 밖에 감히 나가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하나 나타났다그의 옷은 매우 남루했으나매우 단순하고 겸손해 보였고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중이었다그렇다고 보수를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그저 목숨을 이어갈 만큼의 음식만 얻으면 그것으로 그에게는 충분했다그 청년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였다.

 

그는 마을에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곧 깨달았다사람들은 거의 집 밖에 나가려 하지 않았고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부인네들은 샘터에 모여서 마을에 들어와 피해를 준 늑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 마을의 일차적인 문제는 늑대였고그 문제는 또한 꼭 해결되어야만 했다그는 무언가 비상한 결심을 했는데 늑대를 직접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것이다그 결심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마을 입구를 되돌아 나와그는 늑대를 찾아 나섰다드디어 늑대가 나타났다몸집이 크고 무시무시한 놈이었다그놈은 입을 딱 벌린 채 성난 표정으로 프란치스코에게 달려왔는데바로 이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프란치스코는 두려운 기색이 조금도 없이 평온한 태도로 기뻐하며 손을 번쩍 들어 늑대를 향해 십자성호를 그었다그러자 늑대는 즉시 그 자리에 멈춰 서고는머리를 푹 숙이고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흡사 순한 어린 양처럼 프란치스코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형제인 늑대여”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프란치스코와 늑대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다그 대화의 내용은 이 책의 제1부 21장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탁월한 인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에 관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이야기 중의 하나다.

 

잔 꽃송이

잔 꽃송이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1부는 총 53장으로 되어 있으며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몇몇 동료에 관해 수집 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2. 잔 꽃송이의 제2부는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관한 몇 가지 고찰이라는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배경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에 관한 일화와 여러 이야기들은 어디서 생겼는가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와 그가 창립한 형제회의 처음 몇 해 동안에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일부터 보기로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언제나 자신을 무식한 자라고 불렀다그럼에도 그의 인기와 매력은 대단해서 그의 제자들 중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그리고 여러 형태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그들 중에 많은 이들은 이상주의적 성격을 띠었고또한 다른 많은 이들은 이와는 달리 현실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역시 그들 가운데는 유식한 사람들도 있었지만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리고 일반 교우들도 있었고 사제도 있었다.

 

또한관상 생활을 하고자 했던 형제들이 있었는가 하면활동 생활을 하고자 한 형제들도 있었다성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염려하지는 않았다그는 언제나 그것이 지닌 위대한 가치를 생각했고 그 가치를 보존하려고 애썼다성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그 거대한 가족으로 연합시킬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사상이 있었다이 두 가지 사상은 그의 영성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는데 1. 단순함과 겸손그리고 그것들을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가난과, 2. 겸손에 뿌리박고 있는 형제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점이 왜 그가 자기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로 작정했는가 하는 이유다그는 유식한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는 이 두 가지 점을 종합하여 자기 수도회를 작은 형제회라고 불렀다.

 

그러나 형제애에 대한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곧 의견 차이가 형제회 내에서 생겼다배우지 못한 형제들은 유식한 형제들과 의견을 달리했고이상주의를 지닌 형제들은 매우 현실주의적인 형제들과그리고 관상생활을 원하는 형제들은 매우 현실주의적인 형제들과그리고 관상생활을 원하는 형제들은 좀 더 활동생활을 하고자 하는 형제들과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이런 견해 차이에 대한 최초의 징조는 이미 성인이 생존해 있을 때 찾아볼 수 있었다성인이 이집트의 전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인 1220년에 분명히 이런 징조가 나타났다.

 

이 다툼에서 예상했던 대로현실주의를 주장하는 형제들이 마침내 승리하여 형제회의 조직과 발전을 떠맡게 됐다그러나 이 새로운 사태 발전을 받아들이지 않은 몇몇 그룹이 있었다이들은 이상주의를 지닌 형제들이었고그들 중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최초 11명의 동료 중 몇몇도 들어있었다이상주의를 지닌 형제들은 현실주의를 취하는 형제들과 대항하여 싸우려 하지 않고오히려 성인의 이상을 간직할 수 있는 한적한 장소로 물러나 은둔했다.

 

이 형제들은 형제회의 새 지도자들이 세운 거대한 수도원을 떠나서 산을 넘어 아드리아 해안의 마르카” 관구로 갔다.

 

마르카” 관구

우리는 잔 꽃송이의 기원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상주의적인 형제들이 모인 이 그룹을 살펴보아야 한다.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최초로 마르카” 관구에 진출한 것은 1209년이었다그 첫 형제들 중에는 아마도 성 프란치스코 자신과 에지디오 형제도 들어있는 듯하다. “마르카” 지방의 주민들은 단순하고 가난했으며그들 대부분은 들에 나가 일해야 했고그래서 자연에 대해 대단한 애착심을 지녔다이렇게 해서 형제들은 크게 환영을 받았고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1282(즉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 후)에는 마르카” 관구에 85개의 수도원이 생겼다.

 

이 수도원은 결코 크지않고 가난했다어떤 경우에는 형제들이 천상적인 것을 묵상하는 데 몇 시간씩을 보냈던 단지 조그만 초막집에 지나지 않았다.

 

움브리아와 다른 관구 등지에서 형제회가 새로운 방향을 택했을 때성 프란치스코의 첫 동료 중 몇몇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마르카” 관구로 갔다이 동료들은 성 프란치스코를 완전히 본받으려는 기풍과 복음적 이상주의를 이룩해 내었다그들은 성인과 함께 살 때 있었던 여러 가지 추억들을 그 후에 들어온 형제들에게 일화로서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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