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독서

 

내가 읽은 시 (작성자 : 헬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3-12-21 01:01:00 )

관리자 0 520 2021.01.23 09:57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 본다

생기 없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 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이 시는 어렵사리 살아오며 만신창이가 된 한 가장의 내면 고백이다. 그의 옷은 헌 신문지 같고 손과 발은 옹이 졌으며 갈비뼈는 앙상하다. 고단한 육체가 유일한 재산일거라 짐작되는 그는 살아도 살아도 앞날은 막막하고 이대로는 여태 부려먹은 몸에게 어떻게 해볼 길이 없다. 그래서 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것이 곧 삶과의 이별 아니겠는가? 이 시는 절망의 끝에 있으면서도 격정이나 분노가 없다. 극한 상황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이 얼마나 아픈 고백인가 나였다면 분노나 건주정을 목청껏 할 텐데...김사인 그의 시는 그 속에 깊은 눈물이 있어 얼마나 오래 아파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두 손이 모아진다. 김사인 시인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시를 읽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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